간암 | 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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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RM 작성일13-02-28 17:51 조회6,0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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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회사 정기검진때 간염 보균 판정이 나왔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문제였다.
1991년 “더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서는 간경화라고 생각됩니다.
입원해서 검사를 더 받으셔야겠습니다.
” 간염이 좀더 심해져서 간경화가 되었다는 생각뿐이었다.
입원을 하지 못하겠다는 내 말에 간호사는 펄쩍 뛰면서 입원은 빠를수록 좋다고 신신당부 하였다.
3일 뒤 입원을 했다.
검사를 마친 뒷날, 허벅지 위쪽을 잘라 동맥을 따라 호스를 간까지 보내서 촬영을하고 치료도 한다는 설명이었다.
치료 뒤 너무 힘이 들었다.
소화는 더 안되고 가슴이 뜨끔거려 견디기가 힘들었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이틀 뒤 힘든 몸을 아내에게 지탱해 겨우 퇴원을 하였다.
한달뒤 다시 처음과 같은 검사가 이어졌고 또 혈관조형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받고 싶지 않았다.
그때까지 우리들에게 정확한 병명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의사는 조용히 아내를 불렀다.
“지금 남편분은 위험한 상태입니다.
색전술이라도 받지 않으면 몇 개월을 살지 알 수 없습니다.
”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 내가 간암에 걸렸고 크기는 5cm가 넘는 것과
작은 종양이 두 개나 더 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이대로 두면 길어야 6개월을 못 넘기는데
색전술을 받아도 낫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남편을 설득할 것을 아내에게 말했던 것이다.
색전술 다음날 또 심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더 힘든 건 내가 암에 걸렸고
결국 죽을 수 밖에 없을 거라는 공포였다.
1991년 9월 아내의 손에 이끌리어 BRM연구소를 찾았다.
병원에서는 치료를 해주면서도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속상했는데 얼마든지 살 수 있다는 말에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기뻤다.
BRM연구소 박양호 실장이 짜준 식단표는 내게 생명줄이었다.
녹즙 재료와 기능식품에 대한 믿음이 단번에 생겨서 그 길로 나는 반 나은 사람이었다.
다음날로 맑은 공기도 쐬고 직접 기른 신선한 야채로 녹즙을 해먹으며 치료하려는 생각으로 여동생이 사는 경북 봉화로 아내와 함께 내려갔다.
하루 세 번 녹즙을 마시고 짜여진 식단대로 모든 일과가 돌아갔다.
2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검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돌아왔다.
검사 결과 작은 종양 두 개는 이미 없어졌고, 5cm였던 큰 종양이 3.8cm로 줄어있었다.
식이요법을 시작한지 불과 2개월만에 이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다니
기적이었다. 이제 살수 있구나 생각하였다.
다시 2개월 뒤 1cm가 더 줄었고 나는 자꾸 힘이 생겼다.
예전에는 그저 이름뿐인 신앙인이었지만 큰 일을 겪으면서 비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았다.
다시 식이요법에 전념하였다.
몇 개월 뒤 영등포에 방사선과를 찾았다.
“건강합니다.” 백발이 성성한 의사는 힘주어 말하였다.
이제 됐다. 이런 날이 내게도 오는구나.
그리고 3년 뒤 내 몸에는 B형 바이러스 표면 항원이 사라지고 항체까지 생겼다.
얼마전 KBS의 한 건강프로그램에서 취재를 나온 적이 있었다.
‘간박사’ 라고 불릴만큼 간 질환 전문의였다.
“간암이셨나요.
그럼 즉석초음파를 한번 볼까요?
” 위검사 외에 나는 간 초음파를 받게 되었는데 의사도 놀랄 만큼 간이 깨끗하다고 하였다.
<암을 고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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