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염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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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RM 작성일13-02-28 17:49 조회2,7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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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간염. GOT와 GPT가 200이 넘는다며 빨리 치료를 하자고 덤볐다.
3주일 동안 치료를 받으니 몸이 정상이 된 것 같아 본래대로의 생활에 들어갔다.
92년 5월쯤이었다. 늘 그렇듯이 일과 술과 담배 속에 묻혀 살았는데 어느 날부턴가 먹기만 하면 소화가 안 되고 속이 메슥거려왔다.
나중에는 물만 먹어도 토해낼 지경에 황달까지 겹쳐 누렇게 떴다.
부랴부랴 병원에 달려가 혈액 검사를 했더니 GOT가 579, GPT가 1000인 만성활동성 간염이라고 했다.
1개월 남짓 병원 치료를 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아내가 녹즙과 식이요법을 해서 간염이 나은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병원치료와 함께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물어왔다.
명색이 제약회사를 다닌다는 사람이 그런 데에 현혹되고 싶지 않았다.
계속되는 아내의 강권이 있는 데다가 또 녹즙 이나 식이요법이란 게 몸에 나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시작을 했다.
그 때문인지 아주 차도가 없던 이전과는 달리 조금씩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두어 달이 지난 뒤에는 다시 직장에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가슴이 답답해 오고 속이 더부룩해지면서 연방 신물이 넘어왔다.
누런 얼굴이 아예 검게 변해 이러다가 정말 얼마 못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간 디스토마란다. 그리고는 ‘간 디스토실’이라는 약을 처방해주는 것으로 병원은 제 할 일을 끝냈다.
아내는 아예 약을 다 버리고 녹즙과 식이요법으로만 다스려보자고 졸랐지만 아무래도 병은 전문 집단인 병원이 더 잘알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매일 매일이 거의 살얼음판을 걷는 아슬아슬함의 연속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발생했다.
그때가 93년6월. 입원한 지 1주일이 지나도 호전되기는커녕 갈수록 심해지기만 했다.
연방 구토가 나고 코피가 터지더니 멈출 줄을 몰랐고 나중에는 잇몸에까지 벌겋게 피가 고였다.
비장도 비대해졌다고 하고 얼굴은 아예 까매져서 문병온 사람들이 기겁을 할 정도였다.
혈장주사에 고단위영양제, 고당요법을 꾸준히 쓰는 데도 병세는 더욱 깊어져서 이번에는
간부전증과 GOT 100, GPT 78인 전격성 간염까지 합세했다.
전격성 간염인 경우 사망률이 96%에 이른단다. 이쯤 되자 병원에서는 아내를 불러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또 정신을 놓았다. 캄캄한 한밤중인데 아내와 함께 나를 내려다보는 낯선 얼굴이 하나 있었다.
나를 보더니 도리질을 했다.
연구소의 박양호 실장이라는 분에게 지금 당장 연락을 해서 조언을 구하라고 일러주었다.
아내는 밖에 나가 박실장이 일러준것들을 구해왔다. 다시금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그로부터 서너 달이 지난 그해 12월 우리 부부는 병원을 찾았다.
식이요법을 하는 동안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상황에 맞는 처방을 받아서 꾸준히 해온 덕에 몸은 거의 옛 건강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완전히 나았네요. 간염도 치료되고 비장도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복수도 찼었는데 없어졌구요.” 병원으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소리를 들은 지 꼭 5개월만에 이룬 성과였다.
내가 겪어본 식이요법은 세간에 흘러다니는 무슨 병에는 뭐가 좋더라 하는 식의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다.
철저하게 과학적 이론이 뒷받침된 합리적인 방법이다.
<간장병을 고친 사람들>
3주일 동안 치료를 받으니 몸이 정상이 된 것 같아 본래대로의 생활에 들어갔다.
92년 5월쯤이었다. 늘 그렇듯이 일과 술과 담배 속에 묻혀 살았는데 어느 날부턴가 먹기만 하면 소화가 안 되고 속이 메슥거려왔다.
나중에는 물만 먹어도 토해낼 지경에 황달까지 겹쳐 누렇게 떴다.
부랴부랴 병원에 달려가 혈액 검사를 했더니 GOT가 579, GPT가 1000인 만성활동성 간염이라고 했다.
1개월 남짓 병원 치료를 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아내가 녹즙과 식이요법을 해서 간염이 나은 사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병원치료와 함께 써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의견을 물어왔다.
명색이 제약회사를 다닌다는 사람이 그런 데에 현혹되고 싶지 않았다.
계속되는 아내의 강권이 있는 데다가 또 녹즙 이나 식이요법이란 게 몸에 나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시작을 했다.
그 때문인지 아주 차도가 없던 이전과는 달리 조금씩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두어 달이 지난 뒤에는 다시 직장에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가슴이 답답해 오고 속이 더부룩해지면서 연방 신물이 넘어왔다.
누런 얼굴이 아예 검게 변해 이러다가 정말 얼마 못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간 디스토마란다. 그리고는 ‘간 디스토실’이라는 약을 처방해주는 것으로 병원은 제 할 일을 끝냈다.
아내는 아예 약을 다 버리고 녹즙과 식이요법으로만 다스려보자고 졸랐지만 아무래도 병은 전문 집단인 병원이 더 잘알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매일 매일이 거의 살얼음판을 걷는 아슬아슬함의 연속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발생했다.
그때가 93년6월. 입원한 지 1주일이 지나도 호전되기는커녕 갈수록 심해지기만 했다.
연방 구토가 나고 코피가 터지더니 멈출 줄을 몰랐고 나중에는 잇몸에까지 벌겋게 피가 고였다.
비장도 비대해졌다고 하고 얼굴은 아예 까매져서 문병온 사람들이 기겁을 할 정도였다.
혈장주사에 고단위영양제, 고당요법을 꾸준히 쓰는 데도 병세는 더욱 깊어져서 이번에는
간부전증과 GOT 100, GPT 78인 전격성 간염까지 합세했다.
전격성 간염인 경우 사망률이 96%에 이른단다. 이쯤 되자 병원에서는 아내를 불러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또 정신을 놓았다. 캄캄한 한밤중인데 아내와 함께 나를 내려다보는 낯선 얼굴이 하나 있었다.
나를 보더니 도리질을 했다.
연구소의 박양호 실장이라는 분에게 지금 당장 연락을 해서 조언을 구하라고 일러주었다.
아내는 밖에 나가 박실장이 일러준것들을 구해왔다. 다시금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그로부터 서너 달이 지난 그해 12월 우리 부부는 병원을 찾았다.
식이요법을 하는 동안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상황에 맞는 처방을 받아서 꾸준히 해온 덕에 몸은 거의 옛 건강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완전히 나았네요. 간염도 치료되고 비장도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복수도 찼었는데 없어졌구요.” 병원으로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소리를 들은 지 꼭 5개월만에 이룬 성과였다.
내가 겪어본 식이요법은 세간에 흘러다니는 무슨 병에는 뭐가 좋더라 하는 식의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다.
철저하게 과학적 이론이 뒷받침된 합리적인 방법이다.
<간장병을 고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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