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사례

뇌종양 | 신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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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RM 작성일08-10-24 19:25 조회3,5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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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21일 병원에갔다.
나는 MRI사진을 찍었고 다시 거슬리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자기공명영상기기에 누워
한참을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혈관에 주사를 놓았는데 뒤에 안 사실이지만 내 머리 속에 종양이 보여
이를 더 선명하게 보이기 위해 조형제를 놓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의사도 아까와는 다르게 심각한표정이었다.
"사실대로 말씀드립니다. 어떻게 종양이 이렇게 크도록 모르셨습니까?
머리도 많이 아프셨을텐데요. 어서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부터 받으셔야 합니다."

복잡한 접수 절차를 거쳐 겨우 S병원 뇌신경외과에 입원을 할 수 있었다.
9월2일 쇠틀로 머리를 고정한 채 수술대위에 누워있으려니 만감이 교차 하였다.
 어젯밤 병원에서 '종양 체취 중에 신경을 건드리면 온몸이 마비될 수도 있고 자칫
생명도 위험할 수 있으니 법적 책임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있다'는 서류를 받아 들고는
한참 울던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 종양은 교모세포종이라는 악성 뇌종양으로 수술로 치료될 수 없는 종양이며,
항암제와 감마나이프라는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는데 이것도 크기가 너무 커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6개월 길어야 1년. 주변을 정리하라는 의사의 말에 무엇부터 정리해야할지 의문을
던졌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죽을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

나는 집행 날짜를 모르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11월 하순, 다시 MRI를 찍었다. 숱한 항암제 치료에도 별 차도가 없었다.
암 진단 이후 기분인지 머리가 천근만근이었다. 앞으로 쏠리는 듯 무겁고 가끔 어지러워
앉아있기보다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누가 봐도 암 환자였다.

그러던 어느날 여동생이 책한권을 주었는데 '암을 고친 사람들'이었다.
'대체의학요법을 통한 암의 치유 그 과학적 근거와 메카니즘'이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졌는데
놓기가 힘들었다. 하루 밤을 꼬박 읽고 또 읽으면서 내가 살길을 찾은 듯 너무 기뻣다.

이튿날 바로 BRM연구소 박양호 실장님과의 면담을 예약하고
 혈액검사서 , MRI , CT판독서를 꼼꼼히 챙겨 서울로 갔다.

몇 달 만에 엄청난 치료비와 시간을 허비한 나로서는 진작 박양호 실장을 만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식단표를 받아들고 예전에 녹즙기를 사둔 것이 기억이 났다.
그후 아침을 먹고 매일 집근처 뒷산으로 산책을 하는게 일과가 되었고 식전, 식후
보조식품을 잘 챙겼다. 하루종일 먹었다고 할만큼 치열하게 먹고 또먹었다.

2004년 3월 6일 다시 MRI 검사대 위에 섰다.
검사가 끝나고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4cm이던 종양이 1.3cm로 줄어있었다.

2005년 2월 다시 촬영을 했지만 종양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내 상태가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나는 겸손해지고 또 세상 모든 것들이 다 감사하고
아름답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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