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사례

신장암 | 김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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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RM 작성일08-11-05 20:57 조회4,10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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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중순쯤이었을 것이다.
불규칙적인 생활 때문인지 이번에는 며칠째 속이 너무 쓰려서 견디기가 어려웠던
차에 동네 내과를 찾았다.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사의 얼굴은 상당히 굳어져 있었고 계속 검사서와 내 얼굴을 번갈아보면서 무슨 중요한
할말이 있는 듯 한숨만 쉬고 있었다.
"큰 병원에 가서 MRI를 찍어보셔야 되겠습니다."

부산에 있는 대학 병원에 가서 MRI를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어제 검사를 받았던
내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대학병원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래 걸리니
필름이 나오는대로 가져오면 판독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다행이 신장암 초기, 빨리 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수술을 하라고 권하였다.

11월 27일 수술날짜는 정해졌고 정밀검사 결과 다행히 다른 곳엔 이상이 없으며 간에
결점이 두 개 보이는데 암은 아닌 것 같고 혈관종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수술은 역시 수술인지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음을 다잡았다. 절에 다니면서 위안을 받았고 아내의 사랑으로
하루하루 건강을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바쁜 일상이 계속되던 2004년 9월 어느날, 여느때처럼 혈액검사를 하고 초음파를
하던 중 간에 결절이 약간 커졌다는 것이다.
CT 판독을 위해 의사와 마주앉았다.
"수술도 불가능한 신장에서 간으로 전이가 됐고 말기입니다."
의사의 이 한마디가 귓가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또 이런일이
 의사의 말로는 신장에서 발생한 암은 약이 없다고 했다. 유일하게 인터페론을 맞아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간에 혹이 7개나 있기 때문에 손을 쓰기엔 너무 늦었다고 하니...
누구에게 원망을 할 것인가.

그러다가 언뜻 2-3년 전에 KBS에서 방영된 다큐로 말기 암환자가 식이요법으로
살고 있다는 프로를 본 것이 퍼뜩 떠올랐다. 벌떡 일어나 인터넷을 찾아보니 BRM연구소
박양호 실장이 펴낸 책이 들려져 있었다. 지체할 수가 없었다. 당장 BRM연구소로 전화를
했고 CT판독기록, 혈액검사서를 보내라고 했다.
한달음에 의무기록지를 들고 연구소에 찾아갔다.
인터페론 외에는 아무런 치료를 받을 수 없다던 내게 한줄기 빛과도 같은 식이요법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일주일 후 입원을 했다.
현대의학과 천연물요법을 병행을 하면 더 효과적이라는 박양호 실장의 권유로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주치의 역시 믿음이 생겼다.
이 두 사람은 당시 나에게 한 가닥의 희망이었고 등불이었다. 자신감이 있었다.

수술 받기 전까지 병원에서도 열심히 식이요법에 매달렸다. 1월 19일로 수술날짜가 잡혔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수술 날짜와 내 생일날이 겹쳐있었다. 금식 때문에 아침에 미역국도 먹지 못한 나에게 아내는 한아름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1월 19일 10시 15분 수술시작..

다행히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중환자실로 들어가 이틀 후 회복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남은건 심한 통증뿐,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암은 잉여에너지가 있으면 재발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는 동의보감에도
마온 말인데 무엇보다 소식하여 몸 속에 불필요한 지방을 남겨두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 투병의 철칙은 소식과 운동으로 몸을 비우는 것이다. 녹즙과 건강기능식품을 철저히 섭취하기 위해서 식사는 최소한으로 하고 적어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등산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렇게 1년여가 흐르자 검사 결과, 신장과 간역시 암이 사라졌다. 수술로 모두 깨끗이
제거된데다 식이요법으로 흔적만 남겨진채 암이 내 몸 속에서 사라졌다.
암수치도 정상이 되었다.

전혀 치료법이 없다는 신장암도 식이요법이라는 돌파구가 생겼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전이된 간암도 절제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모두 내 마음 속의 확신 때문이었다.
앞으로 면역력을 더 키워 내 몸 속에 더 이상 암이 자라지 않도록 나는 더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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