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암 | 예병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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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RM 작성일11-09-20 20:37 조회2,8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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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부신암세포가 사라졌다. 식이요법과 함께..
최근 KBS2 TV 녹색충전 토요일에 소개되었던, 암을 극복한분 오애자, 이상래, 예병식, 황규명씨가 차례로 암 극복 수기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오늘도 예병식씨는 주문을 건다. ‘내 몸 속의 암들아, 나랑 같이 살자. 서로 괴롭히지 말고 함께 살자‘고 주문을 건다. 이제 괜찮아졌으니 아내 대신 잡곡밥 짓고 청소, 빨래도 도와주면서 살갑게 살아간다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다시 찾은 청춘, 그 청춘을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암환자들에게 바치고 싶다는 말은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하다.
2001년 12월 매서운 바람만 기억되는 날, 건강체질이라고 자만하기까지 하던 나에게 암이 찾아 왔다. 징후는 피로 밖에 없었다. 엑스레이. 초음파. CT검사를 거치는동안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암이었다.
5.5Cm가 넘는 커다란 암 덩어리가 퍼져있었고 뒤돌아서서 울먹이는 아내를 보면서 ‘암이구나’ 직감을 했다.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 어쩐지 병원에서는 고치기는 힘들 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자꾸만 맴돌았다. 우리나라에서 식이요법으로 암을 치료한다는 BRM연구소의 ‘암을 고친 사람들‘이라는 책을 보았고 병원에 다시 들어가기 전에 이미 내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간절한 바람에 수술대 위에 오르기로 했다.
한참 뒤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고 통증과 싸우면서도 궁금한 것이 있었다. “수술은 잘 됐대.” 힘없는 내 물음에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배를 열었을 때 신생혈관과 동맥 사이에 어지럽게 얽힌 암세포를 떼어낼 수 없어 열었던 배를 그냥 다시 덮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암치료 한번 받지 않고 지체할 이유가 없어 BRM연구소를 찾아 식단을 받았다. 식단을 받으면서 박양호실장이 ‘잘 될 것이다’라는 말이 그토록 감사하게 들리던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속된 말로 빽이 생겼으니 갑자기 든든해 졌다.
식이요법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병원 치료는 일체 받지 않겠다고 결심한 뒤 식이요법 6개월만에 검사차 병원에 들렀다. 주치의를 비롯하여 병원 식구 모두들 걸어서 들어오는 내가 신기하게만 느껴지는가 보다. 암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성장을 멈춘 채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지난 11월 정기검진을 받았다. 주치의는 나만 보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한다. 현대 의학이 풀지 못하는 숙제를 잘 풀어내고 있는 나를 기적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살아 있음이 행복하다. 녹즙을 준비하고 소나무와 대화하는 오늘이 있어서 나는 좋다.
그는 ‘하루하루를 감사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암을 극복하는 새 삶의 방식이다’라 한다.
그리고 ‘나침반이 되어줄 전문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투병기록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암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연락이 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는 시간이 되면 그들을 찾아 건강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용기도 주고 있다.
희한한 것은 너무도 귀찮은 일일 것만 같은 그 일이 그의 병을 낫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고 한다.
이것 또한 그가 건강을 유지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최근 KBS2 TV 녹색충전 토요일에 소개되었던, 암을 극복한분 오애자, 이상래, 예병식, 황규명씨가 차례로 암 극복 수기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오늘도 예병식씨는 주문을 건다. ‘내 몸 속의 암들아, 나랑 같이 살자. 서로 괴롭히지 말고 함께 살자‘고 주문을 건다. 이제 괜찮아졌으니 아내 대신 잡곡밥 짓고 청소, 빨래도 도와주면서 살갑게 살아간다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다시 찾은 청춘, 그 청춘을 절망하고 힘들어하는 암환자들에게 바치고 싶다는 말은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하다.
2001년 12월 매서운 바람만 기억되는 날, 건강체질이라고 자만하기까지 하던 나에게 암이 찾아 왔다. 징후는 피로 밖에 없었다. 엑스레이. 초음파. CT검사를 거치는동안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암이었다.
5.5Cm가 넘는 커다란 암 덩어리가 퍼져있었고 뒤돌아서서 울먹이는 아내를 보면서 ‘암이구나’ 직감을 했다.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 어쩐지 병원에서는 고치기는 힘들 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자꾸만 맴돌았다. 우리나라에서 식이요법으로 암을 치료한다는 BRM연구소의 ‘암을 고친 사람들‘이라는 책을 보았고 병원에 다시 들어가기 전에 이미 내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간절한 바람에 수술대 위에 오르기로 했다.
한참 뒤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었고 통증과 싸우면서도 궁금한 것이 있었다. “수술은 잘 됐대.” 힘없는 내 물음에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배를 열었을 때 신생혈관과 동맥 사이에 어지럽게 얽힌 암세포를 떼어낼 수 없어 열었던 배를 그냥 다시 덮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암치료 한번 받지 않고 지체할 이유가 없어 BRM연구소를 찾아 식단을 받았다. 식단을 받으면서 박양호실장이 ‘잘 될 것이다’라는 말이 그토록 감사하게 들리던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속된 말로 빽이 생겼으니 갑자기 든든해 졌다.
식이요법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병원 치료는 일체 받지 않겠다고 결심한 뒤 식이요법 6개월만에 검사차 병원에 들렀다. 주치의를 비롯하여 병원 식구 모두들 걸어서 들어오는 내가 신기하게만 느껴지는가 보다. 암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성장을 멈춘 채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지난 11월 정기검진을 받았다. 주치의는 나만 보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한다. 현대 의학이 풀지 못하는 숙제를 잘 풀어내고 있는 나를 기적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살아 있음이 행복하다. 녹즙을 준비하고 소나무와 대화하는 오늘이 있어서 나는 좋다.
그는 ‘하루하루를 감사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암을 극복하는 새 삶의 방식이다’라 한다.
그리고 ‘나침반이 되어줄 전문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한다.
투병기록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암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연락이 오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는 시간이 되면 그들을 찾아 건강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용기도 주고 있다.
희한한 것은 너무도 귀찮은 일일 것만 같은 그 일이 그의 병을 낫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고 한다.
이것 또한 그가 건강을 유지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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