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경화 | 조옥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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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RM 작성일13-02-28 17:52 조회3,28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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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운동을 해도 찐 살은 빠질 생각을 않고 피로며 권태, 소화불량, 팔다리의 부기, 욱신거리는 허리와 옆구리도 나을 기미가 없는 채로 82년,83년을 보냈다.
방사선과 전문의였던 남편이 증세로 보아 간장에 이상이 생긴 것 같으니 종합검사를 한 번 받아보라고 권했다.
지금은 강남성모병원인 카톨릭대병원에 입원을 했다.
간경화에 고혈압, 당뇨가 겹친 합병증이었다.
병원에서는 손도 쓰지 못하고 쳐다만 보는 형편이었다.
온몸은 퉁퉁 부은 데다가 손바닥만한 두드러기까지 끊이지 않고 생겨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남편이 굼벵이 끓인 물을 가져와 1주일쯤 먹었을까. 내과과장이 퇴원을 해도 좋다고 하여 굼벵이의 효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당시의 나는 가망이 없어서 퇴원을 시킨 것 이었다.
남편은 병원일도 팽개치고 몸에 좋다는 것이라면 뭐든지 구해가지고 들어와 내 앞에 내밀었다.
그럼에도 차도는커녕 두드러기에 붕어처럼 튀어나온 눈, 뭉개진 코, 입도 한켠으로 돌아가 있었다.
견디다 못해 서울대병원에 쫓아갔다.
간경화. 나의 병을 처음 알게 되었다.
입원을 해야 한다는 말을 뒤로 한 채 간경화에 좋다는 약이 없을까 찾던 중에
잡지에서 병원도 포기한 간경화를 식이요법으로 고친 사람을 소개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 길로 찾아간 곳이 BRM연구소다.
녹즙과 식이요법, 잡곡밥.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고비를 넘기니 익숙해졌다.
이렇게 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던가 보다. 소변이 전에 없이 마치 우유에 붉은 물감을 타놓은 것처럼 탁했다.
남편이 검사를 하니 당수치가 아주 높다고 했다.
노폐물이 빠져나오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 뒤로도 사흘 동안 내리 그런 소변을 보았다.
그럴수록 몸도 가벼워졌다.
남편은 더욱 신이 나서 열심히 녹즙을 내서 날랐다.
그리고 또 사흘 뒤 색깔이 점점 엷어지더니 1주일이 지나서는 정상인의 색깔로 돌아왔다.
복수도 다 빠져나갔고, 이젠 다 나은 듯이 기분이 좋았다.
열흘이 지나 서울대병원에 갔다. “아니, 입원도 마다하고 도망가시더니 어디서 이렇게 치료를 했습니까?”
의사가 놀란 눈치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의사에게 지금껏 해온 녹즙이며 식이요법을 들려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태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더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병원을 다녀온 뒤로도 녹즙과 식이요법은 변함이 없었다.
몇 년 전에는 간에 항체까지 생겼다는 결과를 듣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88년 1월 자궁에 종양이 발견되었다.
암은 아니었지만 그냥 두면 위험하다고 해서 한양대병원에서 수술을 하기로 하였으나
다시 한번 BRM 연구소를 찾아 자궁종양에 좋은 녹즙 재료와 식이요법을 받아 곧장 시행했다.
사흘쯤 뒤에 자궁에서 이상한 분비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하더니 며칠을 갔다.
보름 뒤 한양대병원에서 종양이 없어졌음을 판정해주었다.
두 번씩이나 신통한 효험을 본 나는 그 뒤로 아예 녹즙과 식이요법의 전도사가 되었다.
<간장병을 고친 사람들>
방사선과 전문의였던 남편이 증세로 보아 간장에 이상이 생긴 것 같으니 종합검사를 한 번 받아보라고 권했다.
지금은 강남성모병원인 카톨릭대병원에 입원을 했다.
간경화에 고혈압, 당뇨가 겹친 합병증이었다.
병원에서는 손도 쓰지 못하고 쳐다만 보는 형편이었다.
온몸은 퉁퉁 부은 데다가 손바닥만한 두드러기까지 끊이지 않고 생겨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남편이 굼벵이 끓인 물을 가져와 1주일쯤 먹었을까. 내과과장이 퇴원을 해도 좋다고 하여 굼벵이의 효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당시의 나는 가망이 없어서 퇴원을 시킨 것 이었다.
남편은 병원일도 팽개치고 몸에 좋다는 것이라면 뭐든지 구해가지고 들어와 내 앞에 내밀었다.
그럼에도 차도는커녕 두드러기에 붕어처럼 튀어나온 눈, 뭉개진 코, 입도 한켠으로 돌아가 있었다.
견디다 못해 서울대병원에 쫓아갔다.
간경화. 나의 병을 처음 알게 되었다.
입원을 해야 한다는 말을 뒤로 한 채 간경화에 좋다는 약이 없을까 찾던 중에
잡지에서 병원도 포기한 간경화를 식이요법으로 고친 사람을 소개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 길로 찾아간 곳이 BRM연구소다.
녹즙과 식이요법, 잡곡밥.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고비를 넘기니 익숙해졌다.
이렇게 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던가 보다. 소변이 전에 없이 마치 우유에 붉은 물감을 타놓은 것처럼 탁했다.
남편이 검사를 하니 당수치가 아주 높다고 했다.
노폐물이 빠져나오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 뒤로도 사흘 동안 내리 그런 소변을 보았다.
그럴수록 몸도 가벼워졌다.
남편은 더욱 신이 나서 열심히 녹즙을 내서 날랐다.
그리고 또 사흘 뒤 색깔이 점점 엷어지더니 1주일이 지나서는 정상인의 색깔로 돌아왔다.
복수도 다 빠져나갔고, 이젠 다 나은 듯이 기분이 좋았다.
열흘이 지나 서울대병원에 갔다. “아니, 입원도 마다하고 도망가시더니 어디서 이렇게 치료를 했습니까?”
의사가 놀란 눈치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의사에게 지금껏 해온 녹즙이며 식이요법을 들려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태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더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병원을 다녀온 뒤로도 녹즙과 식이요법은 변함이 없었다.
몇 년 전에는 간에 항체까지 생겼다는 결과를 듣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른다.
88년 1월 자궁에 종양이 발견되었다.
암은 아니었지만 그냥 두면 위험하다고 해서 한양대병원에서 수술을 하기로 하였으나
다시 한번 BRM 연구소를 찾아 자궁종양에 좋은 녹즙 재료와 식이요법을 받아 곧장 시행했다.
사흘쯤 뒤에 자궁에서 이상한 분비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하더니 며칠을 갔다.
보름 뒤 한양대병원에서 종양이 없어졌음을 판정해주었다.
두 번씩이나 신통한 효험을 본 나는 그 뒤로 아예 녹즙과 식이요법의 전도사가 되었다.
<간장병을 고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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